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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2, 2011

인지과학으로 여는 21세기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에서 인지과학의 역할에 대한 두 입장

인지과학으로 여는 21세기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에서 인지과학의 역할에 대한 두 입장

2011 한국하버드옌칭학회-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공동학술대회; -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의 통섭 II]
                                                                                                                      -제 1부 토론   원고 전문
 배문정(우석대학교 굥양학부: 인지과학)

1. 왜 인지과학인가?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과 조직이 겪는 난감함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고 변한다는 것이다. 속도감은 원래 상대적인 것이라 현대성으로 대표되는 ‘자본’과 ‘정보’의 생산과 유포의 속도가 진화적으로 물려받는 인간의 몸이 체감하고 따라잡기에 너무 빠르다. 이처럼 인간의 자연적 노동과 인식을 훌쩍 넘어 재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의 체제’는 근대 이후의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실로 19세기 물리학에서 20세기의 생물학, 정보과학 그리고 21세기의 인지과학 및 뇌과학의 발전은 과학과 기술의 무한계성에 확고한 신뢰를 요청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발전의 속도에 상응하는 편리便利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삶의 질은 답보 상태이거나 실상 오히려 더 처참해지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도대체 ‘과학기술’과 ‘인간적 삶’의 살가운 동행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물질적 자연’과 ‘인간 사회’를 두 이질적 범주로, 또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소통 불가능한 두 문화로 간주하고 이들 간의 수렴과 융합 (최근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통섭)의 절박함을 외쳐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 국내외 학계에서는 그 융합의 접점에서 ‘인지과학’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자못 뜨겁게 일고 있다. 이러한 관심의 배후를 잘 들여다보면, 흥미롭게도, 매우 상반된 두 가지 동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 하나는 그동안 자연과학에서 금단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온 인간의 정신과 문화적 삶을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의거해서 파악하고 설명하는 것, 이를 통해, 근대적 세계관의 이상을 완결적으로 구축하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연과학 발전의 정점에서 자연과학적 세계관의 한계를 드러내고 기계론으로 환원 불가능한 인간사와 정신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것, 이를 통해 삶의 생명적이고 실존적인 속성에 대한 인문학적 담론을 과학 기술적 설명의 우위에 두고자 하는 것이다.
참으로 ‘인지과학’은 이 두 상반된 동기를 안달나게 부추길만큼 대단한 학문인가? 불과 4-5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인지과학’이 이처럼 거대한 구상들이 격돌하는 쟁점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다소 과장된 듯하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정신성을 발견하고 고민한 연원이 문명의 역사만큼 길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그리고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 ‘Cogito Ergo Sum'을 외치며 근대 과학문명을 정초했던 데카르트적 기획의 최정점에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단지 과장이나 나르시시즘적 착각이 아니다.
‘인지과학’의 발전이 근대의 이상을 완성하고 매트릭스적인 환상을 인간 세계에 구현하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근대적 이상을 넘어 인간적 성숙과 생명적 세계관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윤리적 계기가 될 것인지는 아직 미결정의 문제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실천의 문제이다. 

2. 근대적 이상의 완성으로서의 학문 융합과 인지과학

정찬섭교수의 ‘인지과학과 융합과학기술’은 현대 과학기술의 성과에 인지과학이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지능입히기, 감성입히기, 사용편의성입히기. 이 영역들은 주로 정보공학이나 로보틱스에서 요구되는 기술적 요구이며, 명실상부 기계에 정신성을 결합하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기계에 정신성을 결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선형성과 단순성, 폐쇄적 완결성을 그 주요한 속성으로 하는 기계성에 정신성을 결합하기 위해서는 정신 또한 선형적이고 단순하고 폐쇄적 완결성을 지니는 것으로 파악하고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정신성을 이러한 기계론적 패러다임으로 이해하는 인지과학적 관점은 인지주의라 불리며, 인지주의는 인지과학을 태동시키고 인공지능중심의 인지과학을 발전시킨 전통적 관점이다.
정찬섭교수는 인지주의의 주요 가정인 인지 단원성이 제반 과학기술과 뇌과학을 비롯한 인지과학의 성과가 융합할 수 있는 개념적, 실질적 기반임을 강조한다. 인지주의의 단원성 가정은 그 실재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나 공학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실효성이 있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기계적 신체와 기계론적 인지의 융합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과연 커즈와일의 예언대로 인류가 생물학적 진화의 한계를 넘어 반인반기계체의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는 것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아직 열려있다 할 것이다.

3. 생명적 연대의 새로운 문명과 인지과학 

심광현교수의 ‘제3세대 인지과학과 SF'는 근대적 이상의 실현으로서의 매트릭스 세계가 아닌 대안적 매트릭스를 제안하고 이를 위한 학문적 실천의 매개로 인지과학 특히 체화된 인지로 명명되는 제3의 인지과학을 채택하고 있다. 근대적 매트릭스가 아닌 대안적 매트릭스를 고려하는 발상의 근저에는 자연과 사회, 개인과 집단, 기계와 생명, 몸과 마음의 거리를 가능한 멀리 통제하고, 각각의 특성과 변화의 궤적을 연구하는 근대 학문의 방식, 즉 ‘나누어 다루기’의 방식이 고도의 효율성을 지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과학 기술의 대상이 기계와 물질을 넘어 생명과 정신의 영역까지 확장된 지금, 21세기의 학문 방식과 소명은 더 이상 ‘통제’와 ‘효율의 극대화’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자각이 있다.
심광현교수의 주장대로 근대 과학 혁명 이후, 인류 문명이 걸어 온 ‘통제’와 ‘소외’의 길을 되돌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자본의 축적이 아닌 인간의 삶에 되돌려야 한다는 자각은 데카르트적 인지주의를 비판하고 등장한 체화된 인지과학의 관점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인지과학의 제반 영역에서는 ‘인지’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진행되었고 주된 초점은 데카르트적 ‘인지’의 유아론적 해석을 넘어 ‘인지’를 몸(신체)과 세계(환경)와의 관계성 속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은 주로 철학자들과 인공지능학자들 사이에서 본격화되었으나, 그 바탕에는 오랜 기간에 걸친 인지심리학자들의 이론적 고민과 경험 연구의 성과들이 있었다.
흔히 ‘세계 속에 체화된 인지embodied embedded cognition’로 통칭되는 새 조류는 디지털 컴퓨터의 정보처리가 아닌, 사람의 실제 행위와 문제 해결 능력에서 살아있는 ‘인지’의 개념을 정립하고자 노력이며, 데카르트적 ‘인지’에 육체성과 상황성, 창조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새로운 접근은 강조점에 따라 크게 ‘체화된embodied 인지’, ‘역동적dynamic 인지’, ‘상황화된situated 인지’, ‘확장된extended 인지’ 등으로 대별될 수 있으나, 이들은 ‘탈데카르트주의’라는 큰 철학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분명한 경계 없이 상호침투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체화된 인지과학의 관점이 지구적 생명연대라는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뇌과학 영역에서 이루어진 미러뉴런의 발견과 감정의 이성적 기능에 대한 발견이 공감적 소통의 실재성과 중요성을 일깨우고 새로운 연구 주제들을 개척해내는 것과 같은 변화들은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이 변화들은 세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다.
심광현교수의 발표에 사족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육체와 분리된 정신의 대타자와 그 완결적 세계를 다루는 영화가 ‘매트릭스’라면, 불구가 된 신체를 벗어나 온전한 신체를 가진 주체가 행성의 다른 생명체들과 공감적 소통을 이루는 ‘아바타’의 내러티브는 테크놀로지를 ‘신적인 주체’로 만드는 병리적 현상이기 보다는 체화된 인지의 관점을 영화적 모티브로 가져간 대안적 세계의 청사진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4. 21세기의 학문 융합 - 수렴과 협응

물질과 정신, 기계와 생명, 개인과 사회가 맺고 있는 그 본유의 관계성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이들 간의 조화로운 지속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개별 학문들의 경계를 가로질러 새로운 혼성 공간을 창출해내는 적극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이정모(2010)는 이러한 실천은 최근에 활발히 논의된 통섭이나 융합의 방식이 아니라, 수렴과 협응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1).
수렴의 방식이란 특정 학문 영역의 주도권을 내세우기보다는 학문 영역들 간의 거리 좁히기를 통해, 각 영역의 논의를 공동의 교역장으로 끌어내는 노력을 말하며, 협응의 방식은 저마다의 인식과 실천을 상호 조정하여 하나의 새로운 질서를 이루어 내는 것을 말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서로 다른 개념과 사고방식을 발전시켜 온 개별 학문들이 공동의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으나 학제간 연구의 성공적인 경험을 가진 인지과학은 그 시작을 위한 좋은 발판을 제공할 것이다2).
  
1)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자연과학, 공학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는 인지과학이라고 할지라도, 엄밀히 말하자면 인지과학이 이루어 내는 것은 통섭적, 통합적, 환원적 융합이 아니라 다른 분야와의 개념적 수렴 내지는 개념적 혼성(conceptual blending)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 다른 분야를 환원시키거나 변질시키거나 제거하는 그러한 의미의 융합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혼성적 공간을 가능하게 하여서 새로운 수렴적 영역을 창출하게 하는 그러한 부류의 융합이다. 따라서 융합이라고 하기보다는 수렴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이정모 2010).

2) ‘인지혁명’으로 20세기 정보기술과 뇌과학의 발전을 주도한 인지과학은 21세기 과학기술의 중심축이다. 하지만 학문간 ‘수렴과 협응’의 관점에서 인지과학은 ‘중심’이 아닌 ‘부분’이며, ‘촉매’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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