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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ugust 2, 2012

Ignoring Congnitive Science: The worst failure of the past Science & Technology policies of Korean Government and Korean universities






[과거 국내 대학과 과학기술 정책의 가장 큰 실책은 무엇인가?]
- 21세기의 핵심 학문 ‘인지과학’을 소홀히 함 -

( 후세 한국 과학기술 역사가들의 평가 ?)
- 2008년 5월에 뉴욕타임즈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David Brooks가
뉴욕타임즈의 칼럼에서 21세기를 "인지의 시대(the Cognitive Age)"
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 ‘인지시대’라는 표현을 접하고,
인지과학 시대’라고 하면 안 되나 하고 혼자 생각하면서도,
그동안 국내에서 황야에서 홀로 울부짓는 늑대(Steppenwolf)처럼
30여년 간을 계속 인지과학을 강조하며 지내야 했던 저로써는
‘또, 인지과학??’하고 반문할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며 접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몇 년 앞서서 (2000년)
캐나다 철학자 Brook & Stainton은 MIT Press 발행의 저서,
'Knowledge and Mind(지식과 마음)"이라는 책에서

"인지과학 시대 (The Age of Cognitive Science)"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철학, 인식론, 심리학, 과학의 관계를, 특히 철학과 과학의 관계를
미래 인간 문화에 맞게 재규정하였습니다.
- (인용: "Philosophy is just the most abstract kind of science and science is just a more experimental detailed kind of philosophy," p. 216) - 정도의 차이일 뿐

이 책에서 ‘인지과학 시대’라고 언급된 것을 다시 발견하고
이에 고무되어 다시 아래 내용의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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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캐나다 철학자들의 책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20세기 후반이나 지금 21세기 초엽에
한국의 대학들과 과학기술 관련 정부기관이
국내의 과학기술 정책 면에서, 또는 대학의 학문 육성 면에서의
법한 가장 큰 실책은
정보처리 중심의 [인지주의], [인지과학] 틀이 떠오르는 것을 대학교육과 과학기술 지원 정책에서 무시하였다는 것입니다.

서구는 ‘과학혁명’이라고 규정되어지는 이 [인지혁명]의
지적 토양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인지주의 관련 학문들을 계속 지원, 육성하여
(학부에) 인지과학 전공이 없는 대학들은 뒤떨어진, 후진 대학들이 되고,
산업적 측면에서는 오늘날의 APPLE, GOOGLE, MS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적 산업 기반을 이루어 내고,

인류 사회를 디지털 문화, 인터넷 문화, SNS 문화 중심으로 변화하게 했으며
Ray Kurzweil이 책, [특이점이 온다.]’ 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지능)과 인공물이 구별 안 되는 근착 미래를 내다보는 틀에 대한 고려가
진지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제기되게 하였습니다.

이 인지주의, 인지과학의 등장으로 기존 ‘과학’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또 디지털 문화가 가능해지고 인공지능, 인터넷, 로봇, SNS 문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이 움직임의 초기 첨병이었던 사이버네틱스 분야는
그 핵심 자리를 인지과학과 그 응용 분야에 내어주고
이젠 점차 거의 해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대신 인공인지시스템(ACS), 물리기호시스템(PSS), 인지로보틱스(CR), 인지신경과학(CN), 응용인지신경과학(ACN), 인지인포마틱스(CI), 뇌공학(BE), 마음물리학(PM), 사용자인터페이스(UX), 등의 역역이 [인지과학 + 신경과학 + 인공지능 + 로보틱스 + 언어] 등의 연결 분야로 뜨고 있습니다.

인지주의, 인지과학의 등장으로 학문, 과학, 기술 개념이,
그리고 우리의 삶의 현장인
세상이, 인류 사회가 바뀌어져가고 있습니다.

ㄱ. 제 1의 르네상스의 후속 결과로, [신]에 종속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리를 찾는 새 Humanity 개념이 필요했던 것이
17세기의 의 [제1의 계몽(깨달음)시대]를 중심으로 한 인류 문화적 작업이었고
그 결과로 ‘과학(SCIENCE)’라는 문화 체계가 등장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면,

ㄱ. 1930년대의 튜링의 자동기계이론, Wiener 등의 사이버네틱스 개념에서 출발하여
1950년대 후반에는 지적으로 앞선 학자들의
지적 소용돌이가 역동적으로 수렴되어 마침내 ‘쾅’하고
이루어낸 20세기의 과학혁명, ‘인지주의(Cognitivism)’의 떠오름(등장)은

인류가 진화하며 그동안 살아온 자연의 현실세계를 넘어서, 가상세계를 열었고,
컴퓨터시대, 디지털 문화 시대, 인터넷 시대, 핸드폰시대,
그리고 지금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하나로 녹아드는
사회적 연결망(SNS) 사회와 문화 속에 우리 인간들을 던져 넣었습니다.
즉, ‘인지혁명(변혁)’의 떠오름 및 인지주의의 확산의 결과로
우리는 전혀 다른 문화와 사회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간 마음과 활동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되물어 생각하여야 하는 시점에 도달하였습니다.
Humanity 개념을 재구성하여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1950 년대의 ‘인지혁명’은 14세기의 르네상스에 필적하는
[제2의 르네상스]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17세기의 [제1의 계몽(깨달음)시대]가 신에 종속된 인간이 아니라
자연적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을 초점으로 하는 시대였다면
지금 21세기는 20세기 후반의 ‘인지혁명’과 그것이 가져온 변화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인공물(기계 등)]과의 상호작용, 공존을 생각하며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Humanity의 개념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하는
[제2의 계몽(깨달음)시대] 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

그런데 한국은?
하고 묻자면

과거는 물론 아직도, 내노라 하는 국내 대학들의 운영자들과
국가 과학기술을 책임지고 있는 관련 국가기관의 행정가들은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과 그 기초 학문적 원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지주의 틀이 미래 인류 사회(산업은 물론) 시사하는 바를
아직도 잘(제대로) 파악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에너지와 물질 중심의 전통적 과학/ 기술 개념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19세기 식 과학관, 기술과에 사로잡힌 그들로서는

1950년대 후반에 사이버네틱스의 기초 이론적 기반을 중심으로 하여
대학-기업이 연결된 학문적, 지적 변혁이 미국 동부 대학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그리고 그 결과로 인류 사회에 ‘디지탈 문화’ 시대,- 컴퓨터 시대, 인터넷 시대,
SNS 사회라는 전혀 새로운 인류 문화의 열림을
가능하게 한
인지주의 ‘과학혁명’,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이 일어났던
“학문적”, 지적 배경과 그것이 미래의 인류 사회,
미래 대학, 미래 과학, 미래 기술, 미래 사회문화에
시사하는 바, 광범위한(far-reaching) 의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의 하나인
스마트폰 중심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인류 사회와 문화의 변화의 흐름의
학문적, 과학적 원천을
단순히 컴퓨터공학과 IT 기술에서 찾고

SNS의 등장과 그로 인한 의사소통을 비롯한 인간사회의 본질적 변화를
컴퓨터공학과 IT 첨단 기술이 가져온 폐해로만 치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과학, 기술계와 대학들의 이러한 학문적, 정책적
실책은
훗날, 20세기 및 21세기의 한국의 학문, 과학, 기술의 상태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에 의해 틀림없이 ‘비판적으로’ 지적되리라 봅니다.

그 편협하고 단견적 정책 실책의 폐해를
지금 누가 가장 많이 받고 있고, 또 가까운 미래에 누가 받을까 생각하자면
가슴이 답답하여져 옵니다.

그 폐해를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젊은이들이 받고 있으며
미래에는, 이 단견적이고 무지한 과학 기술 틀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한국의 초중고교 학생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사람들이
지금은 나이 어린 사람들이 받을 것입니다.

인지과학을 소홀히 한 폐해를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가장 크게 받고 있고
또 미래를 짊어질 우리의 나이어린 학생들이 받을 것이며
그리고 그 여파로 현재 및 미래의
국내 소프트웨어 IT 기업들과 한국 사회문화 전반이
받고 있고, 또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 같은 분이
한국의 미래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달려있다고
강조하여서, 주장하여서 삼성이 심기일전하다고 해서
바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국내의 여러 대학들, 그리고 관련 학계와 기업,
더 나아가서는 사회 일반이 50여년 전의 미국처럼 지적으로 수렴되고 연결되어
20세기의 과학혁명이요, 제2의 르네상스요. 제2의 계몽(깨달음)시대를 가져오고
Humanity의 개념을 재구성하여야 하게 하는
이 인지주의, 인지과학의
기초 연구와 그 응용의 문제가
지적으로 깨어 있는 젊은이들과 학자들의 지적 관심의 중심점이 되어
인지과학의 학문적 기초 인프라가 대학과 대학, 학계에
더 나아가서는 시회 일반에 (매스컴은 물론) 널리 자리 잡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참으로 답답한 시나리오입니다

앞서 6월 18일에 올린 글의 부분을 조금 수정하여 다음에 적어봅니다.

“이제, 어느 한 분야의 편향적 특화, 집중지원 및 다른 분야와의 연결을 무시하는
편협한 단견적 접근이 국가 과학기술 발전 그 자체를 좀먹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 문화적 발전을 크게 저해하는 것임에 대한
새삼스런 깨달음이 있어야겠습니다.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하면.
그 파동이 태평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할 때는 엄청난 폭풍이 된다는
물리학의 카오스 현상뿐만 아니라,
SNS 현상을 비롯한 상당히 많은 사회적 현상들이
복잡계의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미루어 생각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계에서 물질중심의 과학, 기술의
어떤 특정 분야의 선택적 집중과 지원이라는 전략은
후진국을 벗어난 한국 사회가 추구하여야 하는 틀은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인접 분야를 함께 생각하며, 함께 가며 이루어내는,
가족공동체의 개념으로 한국 과학/기술계의 판을 짜고 미래를 계획하여야 합니다.

인류 사회에 디지털 문화를 열고, 소프터웨어 IT를 가능하게 한 학문인
[인지과학]의, 과학적 패러다임을 변혁시킨 그 학문적 기초의 본질과,
그 학문의 응용이 미래 인류사회에 지니는 학문적, 과학적, 기술적 시사를 무시하고,

내노라 하는 대학인데도 인지과학 전공이 학부에 개설되어 있지 않는 대학이나,
[인지과학]을 과학기술의 핵심 분야로 설정하여 지원하지 않는 대학이나 국가는
21세기의 디지털 문화, IT 기술 개발을 논하거나 다루거나
과학기술을 한다고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비의 날개 짓은 아니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결국은
그 선택과 집중의 그 물질과학 영역 자체도 커다란 손상을 입고 발전 못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현재 벌써 그 증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1세기와 미래에는

ㄱ. ‘물질’보다 ‘인간’이 핵심 주제가 되어 테크놀로지의 향방, 창의적 기술 개발을 지배하며

ㄴ. IT를 포함한 미래 첨단 테크놀로지의 개발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테크놀로지) 인간에 대한, 인간 마음 및 행동에 대한, 그리고 인간-인공물의 상호작용 본질에 대한 기초학문적 응용과학적 지식이 없이는 달성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며

ㄷ. 이 모든 학문 분야가 한 공통운명을 지니게 된 가족공동체와 같은 하나의 복잡계 현상/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의 과학기술, 첨단 테크놀로지 개발/지원 정책은
‘함께 가기’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인지과학의 학문적 기초와 발전 연결 없이, 소프트웨어 IT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

이 명제를 한국의 과학기술 관련 국가기관, 대학, 관련 기업 등의 담당자들은
절실히 강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에 맞는 변혁을 이루어 내야 합니다.

지금 !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발상의 전환을 하여야 하리라 봅니다.
물질 중심의 과학기술 틀에서, 그를 넘어서는 미래 지향적 새 융합-통합적 틀로 !

선택과 집중의 후진국 시절의 전략에서 벗어나서
르네상스를 이루어 낸 이태리의 문화적 힘의 원동력이 되었던
개방적 마음과 생각이 지금 필요한 것이고,
나의 분야만 아니고 다른 분야도 ‘함께’ 사는 ‘공동체적’ 생각 틀이 필요한 것입니다.

미래의 복잡계적 사회에서는
‘다른 분야가 잘 되는 것이, 곧 나의 분야도 잘되는’ 식의
‘나눔’의 마음갖춤새가 필요한 것입니다.


2012년 0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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